95세의 이웃사촌을 만나다.(241224)
난 3명(10살, 8살, 6살)의 자녀를 가진 아빠다. 우리 아파트는 매주 수요일이면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12월 18일, 저녁 6-7시 사이. 난 10살 큰딸을 영어학원에 바라다 주러 17층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15층에 엘리베이터가 정차하고 노인 한 분이 부서진 헝겊으로 된 장바구니 손수레를 갖고 승차하셨다. 딸아이와 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에 탈 때면 항상 인사를 하게끔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어서, 난 항상 아이들 앞에서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갑자기 인사를 받으신 어르신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추운 날 오후에 장갑도 끼지 않고 재활용품을 버리러 가시는 것 같아, 날씨가 찬데 왜 장갑을 안 끼셨나고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시며 손수레가 오래되 고장 나서 버리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난 마침 헝겊으로 된 장바구니 손수레가 집에 있어서 어르신께 한 개 갖다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잠시 마주치면, 사실 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50가구 중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내는 이웃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난 인사를 하고 낯익은 동주민을 만나면 안부를 묻곤 한다. 그날 늦은 저녁 나도 재활용품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에 있던 장바구니 손수레를 어르신 댁 문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그 일을 잊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오늘 12월24일, 오후5시경 누군가 벨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인터폰을 보니 몇 일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뵀던 어르신의 모습이 보였다. 난 궁금함을 갖고 대문을 열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어르신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그때 문 앞에 손수레를 선물 받고 너무 고마워서 왔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 나이든 사람은 아는 체도 잘 안 하는 데, 귀한 선물을 받아서 너무 고마웠어요. 우리 안사람이랑 얘기했는데 이렇게라도 인사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왔어요. 이거 애기들 과자 간식으로 사왔는데, 애기들 줘요.” 어르신의 손에는 과자며 사탕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한 봉지 가득 담아있었다. 난 방학을 맞아 집에 있던 첫째 민서를 불렀다. “민서야, 일로 나와볼래?”, 민서는 후다닥 집안에서 나와서 할아버지 앞에 섰다. “우리가 저번 주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민서 예뻐서 과자 선물해 주셨어.” 민서는 허리 숙여 감사인사를 하며 기뻐서 과자봉지를 받았다. 어르신은 95세시며, 교회장로이시고, 인근에 교회에 도보로 다니신다고 하시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셨다. 난 아이가 셋이고, 교회를 다닌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5분여 남짓의 대화는 마무리가 되고 난 아이들과 한번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며 문을 닫았다. 첫째 민서는 왜 할아버지가 갑자기 과자를 들고 오셨나며 나에게 물었다. 난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우리가 할아버지가 필요한 것을 선물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본인을 존중하고 생각해준 따듯함이었기에 그것에 고마움을 느껴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신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인 고유의 정서인 ‘정’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민서는 아빠의 설명을 다 듣고는 아빠가 오늘 정말 좋은 본보기를 보여줬다며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을 해주었다. 점점 더 삭막해지고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좋은 어르신을 만나고 좋은 이웃을 알게 되어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정말 따뜻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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